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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25.4者회담
47년1월 초 북조선인민위원회 수립을 앞두고 김일성(金日成)이 치스차코프대장,로마넨코소장과 함께 연해주의 보로쉬로프로 스티코프를 방문해 북한의 정치.경제 전반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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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
박헌영파(朴憲永派)가 남로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수습 기미를 보였던 좌익 3당합당은 10월16일 박헌영중심의 합당에 반대하는 강진.백남운등이 독자적으로 반대파를 규합해 사회노동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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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.朴憲永의 월북
1946년 9월7일 미군정은 조선공산당 당수인 박헌영 체포령을 내렸다.박헌영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남쪽에서 활동하느냐,아니면 소련군이 진주하고 있는 북쪽으로 갈 것이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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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.6.25발발 돌아온 美방첩대
미군방첩대(CIC)가 48년 한반도에서 철수한 후 그 빈자리를 49년부터 美중앙정보국(CIA)이 들어와 메우게 됐다.CIA 한국지부의 책임자가 명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48년초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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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.누가 최고지도자인가
해방정국에서 최고 인기 정치지도자는 누구였나.얼핏 임시정부 주석 김구(金九)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(李承晩)이 먼저 떠오른다.그러나 해방정국시기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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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47)제89화 내가 치른 북한숙청(29) 전 내무성부상 강상호
(24) 53년말께였다. 주광무 예심처장실에서 느닷없이 큰 소리가 들렸다. 주광무가 박헌영 부수상을 조사하면서 내뱉은 협박성 고함으로 들렸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나하고 그 방을 찾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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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44)내가 치른 북한숙청(26)|강상호|남도당파 제거(21)
나는 연해주에서 공청간부시절 시베리아 형무소의 내부구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. 예심처가 관리하는 내무성 지하감방의 구조도 시베리아 형무소와 거의 비슷했다. 사방이 두꺼운 벽돌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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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43)|내가 치른 북한 숙청(25)|전 내무성부상 강상호|남로당 파 제거(20)
남로당 파 소속 당·정 간부들과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조사가 거의 마무리 돼 가던 53년8월부터 남로당 파 소속 하부조직원들에 대한 검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. 남로당 파 소속 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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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42)내가 치른 북한숙청(24)|전 내무성부상 강상호|남로당 파 제거(19)
중량급 월북 예술인들이 차례로 구금돼 조사 받는 동안 이들의 가족들은 평양시내 변방에 있는 일제시대의 기업 소 건물 등에 분산 수용돼 있었다. 조사가 끝날 때까지의 대기 상태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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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내가 치른 북한숙청(23)|전 내무성부상 강상호|남로당파 제거(18)
내무성「특명반」은 이태준 선생을 연행하기 전 이미 그의 월북이후 동향과 작품 성향을 면밀히 분석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. 조사의 초점을 남로당파의 지도자 박헌영을 지지한 분파주의자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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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39)내가 치른 북한 숙정(21)|저내무성부상 강상호
시인 임화에 이어 이태준·김남천·이원조 등 문인그룹과 작곡가 김순남·연극인 황철 등 월북 예술인들이 무더기로 검거돼 조사를 받았다. 「문화혁명」식으로 소부르좌 사상과의 투쟁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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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38)내가 치른 북한숙청|남로당 파 제거(15)|전 내무성 부상 강상호
방학세가 내무상에 앉자마자 남로당 파 인사들에 대한 대숙청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. 그는 일찍부터 김일성 수상의「특별지시」에 따라 박헌영 부수상을 비롯, 남로당파 인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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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636)|내가 치른 북한숙청(18) 전 내무성부상 강상호|남노당파 제거 13
남노당파 간부들의 검거선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숙청대상인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주소련대사 주영하가 전격 소환된 사실이 알려지자 토착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선 「끼워팔기식 숙청」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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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일성과 권력투쟁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96)
◎남북로당 파벌싸움이 “도화선”/박헌영 월북후 활동:하/“누가 지도자냐” 이상조·이현상 등 공방/박,“미소 공위로 입장 난처” 남쪽에 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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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강동학원」세워 “혁명요람”으로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95)
◎박헌영 월북후 활동:중/초기 석달은 남로당과 통로마련 주력/남북교역상사 등 기업운영 돈줄 확보 ◆DB편집자주:본문생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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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헌영 월북후 활동:상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94)
◎미 군정 체포령에 쫓겨 서둘러 북행/남로당 활로찾기 안간힘/이승엽·김삼룡과 밀회,수시로 지침 시달/당간부 양성·선전물 출판 등/이북을 지원거점으로 활용 ◆DB편집자주:본문생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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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월북작가 임화 김사량 종군문학 공개
월북작가의 6·25종군문학2종이 최근 공개됐다『한길문학』여름호는 1953년「미국간첩」으로 몰려 처형된 임화의 마지막시집『너 어느 곳에 있느냐』를 일본에서 발굴, 전문을 해설과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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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중위세력손잡고 사회주의로통일”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8)
◎박헌영의 정치노선:하/소의 「찬탁」지지에 겉으로만 따르는 척/남쪽 정세 불리하자 김일성 지지 선회 해방후 서울주재 소련영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박헌영은 남북의 「당중앙」위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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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헌영의 정치노선:상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7)
◎“해방직후 공산당재건 소와 합의”/8월18일 상경… 소 영사관과 극비접촉/광주서 지하활동 때부터 메시지 오가/증언자 고광표씨 쿨리코아씨 □특별취재반 북한부 김국후 차장 안희창 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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폭력투쟁자제 합당전력 다짐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5)
◎박헌영김일성 6차회동:3/“극좌노선은 미군정에 빌미 제공”/박,월북으로 2인자 전락/북,김일성시대 본격 개막 박헌영의 최종월북은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민족주의자 대공산주의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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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박 월북시켜라” 밀사 급파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4)
◎박헌영김일성 6차회동:2/김,박의 과격노선 “합당지장” 판단/붙잡히면 남조선공산당 끝장 우려 남한정국의 혼미와 미군정의 공산당탄압은 박헌영의 위상을 미묘하게변화시켰다. 권력갈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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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한정국쑤셔놓고 쫓기듯 평양간 박(비록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3)
◎박헌영김일성 6차회동:1/“북에 남아라”종용받아/사실상 최종 월북인셈/남한쪽 합당 진전없자 김,조정자역으로 나서 46년 10월 남한정국은 혼란의 극을 향해 치달았다. 9월23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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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정판사 위폐사건」집중거론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27)
◎박헌영김일성 4차회동:1/“미군정에 탄압빌미 제공” 박헌영에 화살/개성코스 택해 박 입북/김일성 승용차로 영접 신탁통치결정의 후유증은 46년 중반기가 되면서 이남에 날로 복잡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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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의 좌파 끌어들여라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24)
◎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:2/박김 밀담 열흘쯤 지나 여운형 평양에/소 영사관 통해 정보입수/홍명희등과도 접촉키로 박헌영의 3차 평양방문 분위기는 확실히 1,2차때와는 사뭇 달랐다